"그러니까, 누구시라고요?"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이야기를 들을것인지, 말 것인지. 그 뿐이에요."
"그보다 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하신건가요?"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 아무 번호나 눌러보았을 뿐이에요. 난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건 이야기 뿐이에요."
어떤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녀도 날 모르는 듯 하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요. 당신이 누군지, 내가 누군지 서로 모르기 때문에 어떤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그냥 책이라고 생각해 주겠어요? 우연히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자 이야기를 시작하겠어요. 아니, 먼저 이 이야기를 들을지말지 확실히 정해줘요. 떠드는 도중에 전화가 끊겨버리면 불쾌하니까."
[오후 2시 20분]
어지간히 할 일이 없는 여자인 모양이다.
"그래요, 이야기해봐요."

이야기꾼 에피소드 : 손가락

이지성. 17세. 정상적으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대체로 평범.
"그래서 그 애가 말이야 -."
지금은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집에서 홀로 방학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을 무렵이다.
"그러니까 -."
[4시 25분]
어이없을 정도로 참신하게 전화를 걸어온 그녀의 이야기는 어이없을 정도로 평범했다. 다만 그 이야기에는 철저하게 그녀 자신의 의견이 빠져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꽤 재미있었다. 연초에 학생 회장이 되려던 자신을 모함하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 의견은 들어주지 않고 권위만 내세우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등등 여러가지 시시콜콜하지만 심각한 이야기들을 무덤덤히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나 없이 할 수 있어서 참 즐거웠어. 고마워요."
"천만에요."
[오후 6시 30분]
"그럼 끊을게."
"아 잠깐."
"응?"
난 당연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그래서 결국, 누구에요?"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속삭이듯 대답했다.
"손가락에는 신경쓰지 말아요."
"손가락?"
전화는 끊겼고, 결국 난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 라며 시작되는 이야기. 주인공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네 하늘은 - 》으로 부터 배운 '군더더기 없애기'를 적극 활용해서 한 번 써보고 싶어져서.

그런 이유로 《네 하늘은 - 》의 연재는 전적으로 내 변덕에 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