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도 없고 심장도 없다.

나는 헛소리꾼. 내 얼굴은 헛소리꾼. 내 나이는 헛소리꾼. 내 신분은 헛소리꾼.

그렇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이야기를 한다.

진심은 통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은 이해받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뒤에서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쓰고 난 뒤에야 내 이야기는 인정받는다.

나는 궤변론자. 내 이야기는 헛소리다.


나의 생각이지만, "어떤 유명한 철학자" "어떤 유명한 과학자" "어떤 유명한 CEO"의 이야기라고 둘러댄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노라고.


그래야 어른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래야 어른들은 내 생각을 잠시동안이라도 함께 생각해본다.


난 얼굴이 없다.


"내 생각엔 - 에요. 어떻게 생각해요?"


"누가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헛소리 같지만 -어떻게 생각해요?"


난, 이 두 표현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하고 있다.


난 헛소리꾼이다. 하지만 가면을 쓰면 이야기꾼이 된다.

어린 나는 책을 읽을때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았다. 이야기만 보았다. 그 안의 의미만을 사랑했다. 작가에겐 관심이 없었다. 저자에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때 부터인가 저자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위력은 강했고, 난 내 생각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빌렸다.



그리고 그들의 문장 뒤에 내 생각을 숨겼다.


이것이 나의 페르소나다.


난, 얼굴이 없는 헛소리꾼이다.


지금의 난, 얼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