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에 관하여

센텔 2012.11.05 02:59 조회 수 : 442


<저것은 잘못되었다.>는 명백하게 이해되지만, 그것에 대항하는 것이 - 정확히는 대항하려고 선택한 어떤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는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다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살아. 왜 그 자리를 괜히 뒤 흔들어서 피곤하게 하니.’라던가.


싸우기 전에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저들을 닮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저들과 싸우기 위해선 저들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저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보던 것은 자연스럽게 내 내면에 자리잡는다. 이 딜레마가, 내겐 가장 두렵다.


치졸한 수법이고, 마음에 안 드는 방식이지만, 이 방식의 싸움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메시징 테러>를 결행했고, 결과는 생각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그냥, 종이가 제거 당했다. 그 뿐. 그렇게 끝. 끝.


정말 중요한 의미가 변해가는 것은 자정하지 않으면서, 백신같은 문구는 이물질로 판단되어 스스로 제거한다. 심지어 바이블의 구절을 갖다 붙였는데도. 아아, 이젠 질렸어.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레지스탕스 지하기지가 나치에 의해 발견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목숨이 경각에 놓인 레지스탕스들과 나치 군인들이 말린 콩 이 든 병이 굴러가는걸 함께 가만히 바라보던 일. 그래.우린 중요한 일보다 사소한 일들에 더 눈이가곤 하지. 그건 나도 그랬고 - 양면 테이프 때문에 유리 문이 상하는 건 미안한데 - 저들도 그랬다.


실패한 이유도 분명 전 일에 찝찝하게 생각하던 이유와 같은 문제다. 난 인간과 싸우러 했다.. 난 언제나 무언가 싸울 때 면 잘못된 시스템과 싸워왔는데, 이번만큼은 인간과 싸우려 하고 있었다. 내가 느낀 위화감은 이거였다. 그리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내가 꿈꾸는 이야기는, 반성의 세대. 선대들의 오만과 욕심으로 어지럽혀지고 뒤틀린 것에 분노하고 비난하기 보단. 우리 선에서 반성하고 고쳐나가는 지혜가 우리 세대에게 있기를. 그것이 가장 큰 이익이며 바람직한 길 임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를.


오만한 광대. 환호에 취해 그것을 권력이라 생각하는. 저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타락했다.


그러나 난 어떠했나. 자신이 속했던 곳의 타락도 문제도 몰랐고, 알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알았어도 눈 돌리려 했던 자신에게 반성을.


결국 신도들에 의해 부정이 스스로 제거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거라 하는것을 나는 바이블에 기반하여 죄라고 판단하고 있다. 바이블을 아는 자라면 ‘데나리온’이란 말 만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알겠지.


타인보다 낮은 달란트. 그것이 모종의 믿음일지라도 그것을 땅 속에 묻어두기만 하면, 적은 돈을 잃을게 두려워 땅 속에 돈을 숨겨둔 종을 꾸짖은 주인의 말 처럼 잘못이 아닌가?스스로 정화되지 못 하는 단체는 모두가 타락했다고 가정해도 변명거리가 없다.


생각이 정리되었고, 상황도 이해했다. 싫어했던 것은 신의 개념이 아니라, 그 부조리함이었다. 애초에 종교인엔 논리적으로 신이 존재 하냐 안 하냐에 대한 것은 처음부터 아무도 관심 없는 주제였는데 헛짚었구나. 공부가 되었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움직이는 사람들을 비난힌다. ‘핍박 받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는 사회에서의 비난이 아닌, 교회 안에서의 비난과 핍박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래, 그것이 저들에겐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이기도 하고. 한국엔 멋진 속담이 많다.



정말 생각보다도 더 재미없는 전개였다. 현실의 이야기는 이정도구나. 

이번 일로 알게된건 ‘지도자 뿐 아니라 구성원들도 다 마찬가지’라는 결론이다. 모두가 적이었구나. 메시지는 훼손되었다.

<윗 놈들 하는 걸 그대로 보고만 있는 놈들은 스들과 다 마찬가지다>라는 말을 한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었고, 그 말을 쉽게 부정하기 힘들어졌다. 물론 그 말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나저나. 정말로 작은 돌이었네. 개구리가 맞아도 죽지 않을 만큼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