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6
또 새로운 인연이. 새로운 이야기가. 9번째 노트가 멀었는데도, 나아감은 어느 때보다 빠르다.
..
병렬화 되어 있는 기호화된 의미. 그러나 병렬화가 되어 있지 않은 한 당신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병렬화를 거부한 채 독자적으로 '부여한'의미를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어리광이 곧 '운명을 믿는다.'는 행위인가.
의도적 연결 없이 우연히 독자적인 두 개체가 동일한 기호에 동일한 의미를 부여했을 확률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을 기다림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날 알아주는 사람'이고 '운명'인가.
어리광이다.
우리는 소통 - 즉 집적적 관계 - 를 통해서 우리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고, 정보와 경험의 병렬화를 체험할 수 있다.
...
센텔을 완성하는건 되려 쉬울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있는 결과에 맞춘 선택적인 정보의 해석과 관성에의 극복. 그것은 차차 진행되고 있으며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라디안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룰 것인지. 그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멀었던가.
'자, 이제 놀이는 그만두어라. 삶을 살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