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은 비가 올 때, '비가 온다'고 말하지 않는다.

2011-11-20

공기는 차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다지 거세지도 않은 언제 그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애매한 소나기였다.

차라리 폭우가 내렸다면 가슴이 시원했을까. 푹 젖어버리면서 '비가 내려서 좋아'를 되뇌였을까. 혹은 누군가를 탓했을까? 그렇다면 우산을 챙기지 않은 자신을 탓했을까, 하필 오늘 비를 쏟아버린 하늘을 탓했을까.

아무튼 그런 것에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는건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한 표현은 텍스트가 아니었다. 문자로 되어있지만, 그림과 더 가까운 것이었다. 이미지화 되는 심상이다. 물론 텍스트는 표현을 수반한다. 표현된 그것은 이미지냐? 혹은 텍스트냐? 그것은 중요한 문제다.

놀랍게도, 스크린으로 본 세상은 직접 바라본 세상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졌다. 스크린은 이미지가 아니다. 스크린은 텍스트다.

이야기꾼은 비가 올 때, 비가 온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야기꾼은 현상에서 텍스트를 읽는다. 텍스트에서 현상을 쫓는다.

그들이 비가 올 때, 그냥 '비가 온다'고 말하는 것은 비가 오는것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텍스트가 된다.

← 목록으로